안먹는 우리아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아이가 밥(혹은 이유식)을 잘 안 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부모의 마음은 답답하기도 하고, 쑥쑥 잘 자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잘 안 먹는 아이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몇 가지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이 중에는 심리적인 원인도 있고 의학적인 원인도 있으며, 복합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봐도 도저히 ‘왜!!!’ 안먹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1. 우리 아이는 정말 잘 안 먹는
아이인가?
(Infantile Anorexia)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오해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아이는 스스로 얼마큼 먹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 정도는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혹은 아이가 스스로 얼마큼 먹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먹는 양은 부모가 보기에 너무 부족하므로 밥을 ‘더 먹어야’ 아이에게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의 몸은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의 양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단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가까이에만 있으면 됩니다.
특히 돌-두 돌 무렵의 아이들에게 더 그렇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이맘때 아이들은 특별히 아픈 데가 없어도 식성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에 잘 먹던 아이가 안 먹으면 부모 입장에서는 많이 당황하기도 하지요. 이전에 비해 더디게 자라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더 ‘많이’ 먹여서 쑥 크게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우리 아기가 유독 안 먹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 아기는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아기는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 알아서 먹고 있는데, 부모가 더 먹으라고 하면 오히려 반감이 생겨 잘 안 먹으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보통 학생 때에 오랜만에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을 때 옆에서 ‘공부 좀 해’라는 소리가 들리면 잔소리로 느껴지는 경험을 해 보셨을 텐데요, 아기도 인격이 있는 만큼, 자기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많이 연구한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먹을 음식의 종류와 시간은 부모가 결정(준비)하고, 먹을 양은 아기가 결정하도록 하라” 그런데 이게 말은 쉬워도, 실제로 이렇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참 어렵지요.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 않으니까요. 적당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아이 중에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들… 그중에 일부는 간식을 지나치게 먹어서 그런 경우도 있으니 확인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런 경우 간식의 양이 너무 많지 않은지 확인해보고, 많다면 간식의 양을 줄이는 것이 먼저겠지요. 또한 아이들은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하게 되어 있으므로, 아이에게 과자를 안 먹게 하려면 부모 먼저 과자를 안 먹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2. 특정 음식에 대해
예민한 경우
(Food Aversion)
이를테면, 분유를 먹다가 사레가 심하게 걸려서 놀란 기억이 있는 아기는 젖병만 보면 심하게 웁니다. 그런 아기들은 젖병이 아닌 다른 형태, 즉 이유식 같은 것은 잘 먹기도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이유식을 억지로 먹다가 사레 걸린 아기들은 한동안 이유식을 거부하고 모유나 분유만 먹기도 하지요. 좀 큰 애들은 음식을 먹고 체했다든가 하면 그 음식을 장기간 안 먹으려고 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3.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몸이 아프면 안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른들도 감기몸살에 걸리면 입맛이 없어지는 경우처럼요. 입안에 잇병이 생겼다든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아기가 너무 안 먹어요’라고 하며 병원에 온 경우 중에 알고 보니 잇병이 심하게 나서 못 먹는 경우도 있었지요. 특히 여름철에는 수족구병, 구내염 등 입안이 허는 병에 걸린 경우, 너무 안 먹어서 병원에 가보면 수족구병이나 구내염 진단을 받는 아기들도 있습니다.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도 그 음식을 먹기 싫어합니다. 달걀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기들은 달걀만 먹으면 몸이 가렵거나 구토 증상이 생기거나 해 몸이 힘들어져서, 달걀을 안 먹게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특정 음식을 이유 없이 안 먹는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4. 애착 형성이 잘 안된 경우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어야 잘 크지요. 같은 음식을 먹으며 자란 아이 중에도 어른으로부터 안정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는 잘 성장하는 반면,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갈등의 골이 깊은 경우, 혹은 심지어 학대, 무관심 속에 자란 아이들은 더디게 성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잘 먹으려고도 하지 않지요. 이런 경우 안타깝게도 가난, 우울증, 부부갈등 등의 심한 스트레스에 처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의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아기에게 안정적인 사랑을 주게 되면 아기는 쑥쑥 자라게 되지요. 꼭 부모가 아니더라고 친척, 이웃, 혹은 보육교사 등 그 누구에게라도 안정적인 사랑을 받으면 아기는 잘 성장하게 됩니다.5. 그 외의 경우
그 외에도 우리 아이가 왜 밥을 안 먹는지 도저히 원인을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열하기 어려운 수많은 의학적인 질환도 있고요. 어쩌면 매우 복잡한 심리와 인체를 가진 한 사람을 단순히 몇 가지 원인으로 모두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흔히 볼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를 위에서 설명해 드렸습니다.